주일 설교 26/02/01 마태복음 강해 34. "좋은 눈 나쁜 눈" (마태복음 6:22-23)
마태복음 6:22-23 “좋은 눈 나쁜 눈”
마태복음 6장 19–24절에서 예수님은 보물을 어디에 쌓을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문제는 단순한 재정 관리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누가 우리의 삶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이다. 오늘 본문인 22–23절은 바로 그 한가운데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가 우리의 삶 전체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예수님은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하시며, 눈이 좋으면 온 몸이 밝고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둡다고 하셨다. 여기서 ‘좋은 눈’은 하나만 바라보는 눈, 초점이 나뉘지 않은 눈을 뜻한다. 반대로 나쁜 눈은 시선이 여러 갈래로 흩어진 상태이다. 성경은 좁은 길과 넓은 길,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놓고 섬길 수 있는 대상은 없다.
또한 ‘좋은 눈’은 이웃을 사랑과 긍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차이는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를밝히거나 어둡게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삶이 혼란스럽고 어두울 때, 상황보다 먼저 우리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과 성공, 안정과 미래, 가족과 건강에 시선을 고정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붙잡고 있는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잠깐이며 영원하지 않다고 말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예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이 향해야 할 단 하나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하나님만이 완전한 만족을 주실 수 있는 분이다.
인류의 첫 범죄는 하나님만 바라보던 눈을 잃어버린 데서 시작되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고백했지만 인간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넘어졌고, 반대로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를 바라보며 사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에 대한 선언이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최상위 가치가 될 때, 삶 전체가 밝아진다.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산다는 것은 일상의 책임을 버리는 것이아니다. 가족과 직장, 미래를 소중히 여기되, 그것들이 주인이 되지않도록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아래 둘 때 그것들은 선물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예수님은 흐려진 우리의눈을 고치기 위해 오셨다.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 아닌 것을 주인삼으려 했던 죄를 드러내고, 우리의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신 사건이다. 좋은 눈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 결단만이 아니라, 날마다 다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삶이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이웃을 바라보는 눈도 바뀐다. 하나님의사랑으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지금 우리의 눈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우리의 선택과 계획을 지배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눈이 바로 서면 삶이 밝아지고, 눈이 흐려지면 온 몸이 어두워진다. 우리의 시선이 다시 하나님께 향할 때, 우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