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27-30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옛 계명을 다시 말씀하시면서, 단순히육체적 행위의 차원을 넘어 마음과 시선의 영역까지 확대하여 적용하십니다. 여자를 음란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으로간음을 저지른 것이라고 선언하심으로, 율법의 본래 깊은 의도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외형적 행위만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 죄가 시작되는 마음의 뿌리와 욕망까지 다루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눈과 시선에 집중하시는 이유는, 눈이 마음으로 들어가는 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가 결국 마음을 채우고,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다윗이 옥상에서 밧세바를 본 사건이나,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본 순간부터 죄가 확장된 사건은,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반대로 시편 기자는 하늘과 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했고, 욥은 눈과 언약을 맺음으로 마음을 지키고자했습니다. 즉, 무엇을 보느냐가 곧 마음을 지키는 일이 됩니다.
예수님은 눈이나 손이 범죄하게 하면 차라리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낫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이 극단적 표현은 우리의 영적 순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는 발달한 기술을 통해 쉽게 유혹에 노출되며, 성적 왜곡이 사회 전반에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마음을 넘어 가정과 공동체까지 파괴할 수 있기에, 예수님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음란한 눈”이라는 표현은 원어적으로 ‘탐심’과 연결됩니다. 단지 성적 욕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갈망하는 모든 마음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이말씀은 제7계명뿐 아니라 제10계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결국 모든탐심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사랑을 배반하는 영적 간음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우상을 따르고 다른 나라를 의지한 것을 영적 음행이라 부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은 늘 세상을 향하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변명하지 못하게 하여 죄인 됨을 인정하게 하고, 결국 그리스도의십자가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단지 죄의 형벌에서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만을 갈망하도록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 눈과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세상의 유혹에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을 갈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고백은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드는 소망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더럽고 부끄러운 죄를 덮으셨고, 그안에서 우리는 거룩을 회복해 갑니다. 오늘도 우리 눈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붙들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