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13-4:2 "이는 내가 사랑하는 나들이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요청하시는 장면은 매우 낯설고 충격적입니다. 죄인을 향한 회개의 세례를 죄 없으신예수님이 받으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도 당황하며, 오히려자신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립니다. 요한은 예수님의신발 끈도 감당할 수 없는 자라고 고백했던 자로서, 주님의 세례를감히 행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와 같이 하여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말씀하시며, 반드시 이 세례가 필요함을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단순한 도덕적 바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철저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로서세례를 받으시며, 우리 죄인들의 자리에 서십니다. 죄인이 아닌 예수님이 굳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대표하시고, 그들이 감당하지 못했던 순종을 대신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단지 상징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한 구속의 시작이자 결정적인 첫걸음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 마치 학교 교복을 입듯, 우리와 같은 자리에서시고, 자신을 우리와 동일시하십니다. 군인이 군복을 입고 훈련소를 거치듯, 예수님도 훈련이 필요 없지만, 우리를 대표하기 위해 같은 길을 걸으십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의 순종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패한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과 아담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그 길을 다시 걷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와 홍해를 지나고 광야에서 실패했듯이, 예수님은 유년기 이집트 체류, 세례(물의 통과), 광야 시험을 통해 그들의 실패를 자신의 순종으로 채우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자리, 아담이 불순종했던 그 에덴의 자리에서, 이제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이루십니다. 그분은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죄인을 대신하여 철저히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이루지 못한 ‘모든 의’를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그 의는단지 예수님의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 전가되며, 우리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대표자로서 우리를 위해 의를 이루셨고, 그분의 의는 마치 공동 계좌처럼 우리의 계좌에 입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가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이 이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세례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잇는 다리가 놓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순종하시고, 우리 대신 의를 이루시며, 우리 대신 하나님 앞에 서십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혼자 하나님 앞에 설 필요가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가 되시며, 그분의 의가 우리의 의가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