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25/10/19 마태복음 강해 23. "위선자들처럼" (마태복음 6:1-6, 16-18)
마태복음 6:1-6, 16-18
마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우리 신앙의 ‘동기’를 다루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구제, 기도, 금식이라는 세 가지 경건 행위를 언급하시며, 그것이 신자의 삶 속에서 당연히 존재해야 할 행위임을 전제로 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그 행위들이 사람의 눈에 보이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신다. 예수님은 겉모양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첫째, 예수님은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신자의 당연한 삶으로 전제하신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구제할 때에”, “기도할 때에”, “금식할 때에”라고 말씀하시며, “만일”이 아니라 “when(할 때에)”라는 표현을사용하셨다. 이는 이러한 행위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신앙의 삶임을 보여준다. 구제는 자선이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랑의 실천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이미 가난한 자, 약한 자, 나그네를 돌보라고명령하셨다. 레위기 19:33–34은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을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신명기 10:18–19은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신다”고 말한다. 그이유는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우리를 그렇게 돌보셨기에, 우리도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잇는 참된 구제와 기도의 삶을 요구하신다.
둘째, 예수님은 위선의 문제를 지적하신다. 예수님은 행위 그 자체보다 동기를 문제 삼으신다. 구제나 기도, 금식이라는 외적인 행위가아무리 경건해 보여도, 그 목적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위선이다. 위선(ὑπόκρισις)이라는 단어는 원래 배우가 가면을쓰고 연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심이 아닌 겉모습만을 포장하는행위를 말한다.
예수님은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구제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 금식할 때 고의로 초췌한 얼굴을 만들어 경건한 척하는 사람들을 지적하셨다. 그들은 결국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얻기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그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느니라”라고 단호히 말씀하신다. 즉, 사람의 칭찬으로 이미 보상을 받았으니,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단지 바리새인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도 같은 마음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신앙인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 속에도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인정은 결코 우리의 존재 가치를세워주지 못한다. 우리의 가치는 하나님께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서는 신앙을 요구하신다. 로마서 5:8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한다. 또한 이사야 43:1, 4절은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고 말씀한다. 우리의 참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선언되었다. 세상의 평가는 언제든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선언은 변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6:20은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가장 값비싼 대가로 구원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칭찬과 인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셋째,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를 강조하신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세 번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4, 6, 18절)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신다는 뜻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와 눈물과 헌신을 다 아신다. 사람의 시선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영원하다.
하나님께서 갚으신다는 말씀은 단순한 물질적 보상이나 명예를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밀한 자리에서 행한 믿음을 기억하시고, 그 삶을 책임지신다. 세상은 즉각적인 인정과 결과를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으로 인내하는 자에게 하늘의 상을 약속하신다. 갈라디아서 1:10에서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신앙의 본질을 꿰뚫는다. 우리의 목적이하나님께 있는가, 아니면 사람에게 있는가?
결국 이 말씀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라는 부르심이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중심을 아신다. 아무도 모르는 헌신,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순종이라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신자는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 속에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셨다. 그분은은밀히 기도하셨고, 겸손히 순종하셨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진실하게 행하며, 하나님 앞에서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도록 부르신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께서기억하시며, 하나님께서 갚으신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자유이며,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삶이다.